신과 나눈 대화 2권 2-2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mark) <210.120.14.133>
날 짜 (Date): 1998년 10월  1일 목요일 오전 06시 06분 55초
제 목(Title): 신과의 대화 2권 (2/2)


저에게 나의 느낌을 존중하라는 것은 마치 처음에 저를 곤경에 빠뜨리게 했던 것
처럼 들립니다.

> 그것은 네가 성장을 "곤경"이라고 이름 붙이고, "안전"속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너의 느낌은 절대 너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느낌은 진실이기 때
문에.  
느낌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즉 네 마음이라는 기계를 통해 너의 모든
느낌들을 걸러내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라. 너의 마음이 내리는 상황 분석에 따라
결정을 하라. 하지만 그런 기계적인 삶에서 기쁨을  찾지 말고, '진정한 나'의 축
복도 찾지 말아라.
이를 기억하라: 진정한 축복은 마음 없음이다.
너에게 최선인 것이 너에 대한 진실이므로, 너의  영혼에 귀 기울인 다면 너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진실인 것에 따라 행동할 때, 너는 지름길을 가게  될 것이다. "과거의 진
실"에 근거한 경험에 대한 반응 대신 "지금의 진실"에 근거한 경험을 창조할 때,
너는 " 새로운 너"를 만들어 내게 된다.
네가 선택한 실제를 창조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이유는, 너는 너의 진
실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을 깨달아라, 그리고 진실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일단 너의 진실을 깨닫게 되면, 그 것에 대한  너의 마음을 이리 저리 바꾸지 말
아라. 그 것은 너의 마음이 무엇이  "최선"인지 알아내려는 시도이다. 그  것을
멈추라! 마음에서 벗어나라. 너의 감각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너의 감각으로의 환원"이 의미하는 바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냐에로의 환원이다. 너의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마음의 건축물.
너의 마음에 의한 조작된 창작물. 하지만 너의 느낌은, 그 것은 지금 진짜이다.
감각은 영혼의 언어이다. 너의 영혼은 너의 진실이다.
이제, 이 것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 것이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이라 할  지라도, 어떠한 느낌이든지 표현
하라는 의미입니까?

> 느낌은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이거나 하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진리일  뿐이다. 너
의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이 문제가 될 뿐이다.
너의 진리를 사랑으로 표현할 때,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결과가 오는 적은 거의
없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 것은 누군가 너의 진리를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으로 경
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이런 결과를 피할 방법은 너에게 없을
것이다.
너의 진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항상 사람들
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 것이 야기하거나 직면해야 할 불쾌함이 두려워서 그
들은 아예 진리를 숨겨버리고 만다.
기억하라: 메시지가 어떻게 보내어지느냐가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보다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너의 진리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냐는  너의 책임이 아니다; 너는 오
직 그것이 얼마나 잘 의사소통이 되었는지 확신할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잘'
이라는 것은 단지 얼마나 명확하냐의 의미만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통해,
얼마나 인정있게, 얼마나 섬세하게, 얼마나 용기있게, 얼마나 완전하게를 의미하는
것이다.
절반의 진리, 냉정한 진리, 평범한 진리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는
완전한 진리이며, 오직 진리일 뿐이며, 따라서 너, 즉, 신을 돕는다.
"너, 즉, 신을 돕는다"는 사랑과 동정의 신적 지위를 가져온다  - 네가 나에게 요
구한다면, 나는 네가 항상 이런 식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렇다. 너의 가장 부정적인 느낌이라고 하는 것들을 표현하라, 단 비파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의 표현(즉, 방출)을 못 하면, 그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머무른다.
내재된 부정적인 감정은 육체를 상하고 영혼에 짐을 더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전달이 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 나는 부정적 감정들을 표현(방출, 제거)하라고 했지,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하는
지를 말하지 않았다.
모든 부정적 감정이 그 것을 느끼는 대상이 되는 사람과 공유될 필요는 없다. 감정
표현을 못 할 경우 이것이 너의 완전성을 손상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게 될 경우에만 다른 사람에게 이 감정들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것은 순간적으로는 진실인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이 것은 보통 너의 치유되지 않은 부분에서 기인된다. 사실 항상
그렇다.
따라서 이들 부정적 감정들을  내보내고 해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직 이
감정들을 내 보냄으로써 - 방출하여 너의 앞에 꺼내어 놓음으로써 - 네가 진실로
이 것들을 믿는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네가 모든 추한 것들을 말하게 되면, 일단 말을 함으로써, 너는 그  것들이 더 이
상 사실로 느껴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너는 감정들-두려움, 노여움, 분노-을 모두 표현하게 되면, 일단 표현되어 짐으로
써, 너는 그 것들이 네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들이 더 이상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들은 미묘한 것이다. 감정들은 영혼의 언어이지만, 너의  마음이 위조
해 낸 것이 아닌 진실된 감정에 귀 기울이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 이제 내 감정 조차 믿을 수 없군요. 대단하군요! 그 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인
줄만 알았어요! 그 것이 당신이 나에게 가르치는 교훈인 줄만 알았어요!

> 그 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내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하지만 그 것은 네가 이
해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므로 잘 들어라. 어떤  감정들은 진정한 감정들이다.
즉, 영혼으로부터 탄생한 감정들. 어떤 감정들은 위조된 것들이다. 이들은 너의
마음이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전혀 감정이 아니다 - 그들은
생각들이다.
감정을 가장한 생각들.
이들 생각들은 너의 이전 경험들과 네가 관찰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근거한다.
너는 누군가 이빨을 빼고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는 네 이빨이 빠졌을 때  
너의 얼굴을 찌푸린다.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얼굴을 찌푸린다. 너의
반응은 사실과는 관계가 없고 오직 다른 이의  경험 혹은 언젠가 네게 일어났던  
일들에 근거하여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와 관계가 있다.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도전은 일 들을 꾸며내지 않고, '현재  여기에 존재하기'이다!
현재(pre-sent) 순간(네가 사물에 그에 대한 생각을  갖기 전에 보내진sent 순간)
에 대한 생각을 만들지 말라. 순간 속에 존재하라. 기억하라, 이 순간은 네가 너의
자아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이 순간은 엄청난 진실의 씨앗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도착하면 너는 즉시 그에 대한 생각들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순간 속에
존재하는  대신, 순간의 바깥에 서서 판단을 내린다. 그리하여 반응하는 것이다.
즉,
전에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재연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 두 단어들을 보라:

                REACTIVE (반응적인)
                CREATIVE (창조적인)
같은 단어임에 주시하라. 단지 "C"가 움직였다! "C"가 제자리에 있도록만 하면,
너는 반응적이 아니라 창조적이 된다.

매우 분명합니다.

> 신은 그렇다.
하지만, 보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매  순간에 대해 이전의 생각 없이 명확
하게 다가 간다면, 너는 이전의 너(who you once were)를 재연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너(who you are)를 창조하는 것이다.
삶은 창조의 과정이거늘, 너는 마치 그것이 재연의 과정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어찌 뭔가  일어나는 순간에 이전 경험들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러내고 이로부터 반응하는 것은 정상
아닙니까?

> 정상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정상"이란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자연스러움"은 네가 정상이지 않고자 할때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말한다!
자연스러움과 정상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순간이든 너는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한다: 사랑보다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사랑으로 행동한다면 너는 자연스러워 진다. 두려움, 후회, 성냄으로 반응한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행동일 수는 있지만, 절대로 자연스러울 수는 없다.

어떤 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과거의 나의 모든 경험들이 소리치고 있다면,
어떻게 사랑으로 행할 수 있겠습니까?

> 너의 이전 경험을 무시하고, 순간 속으로 들어가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
너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라.
이것이 여기서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하라.
네가 이렇게, 이 순간에, 이 장소에, 이 세상에 온 것은 '너는 누구인가'를
알고, '네가 되고자 하는 누군가'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모든 생명의 목적이 이것이다. 삶은 지속되는, 그치지 않는 재창조(re-creation)의
과정이다. 너는 계속해서 네 자아의 보다 높은 이상에 대한 이미지의 자아를
재창조해간다.

하지만, 자신이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지
않은가요? 오직 "나는 신이다!"이렇게 외치면서 그의 "이전 경험"과 "관찰되어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무시하면서요. 현명한 것 같지 않군요.

> 나는 말한다: 인류는 비행보다 훨씬 위대한 것을 이루었다. 병든 자를 치유했고,
죽은 자를 소생케 하였다.

오직 한 분이 그렇게 했죠.

> 이 물질적 우주에 오직 한 사람만이 그런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여기는가?

오직 한 분만이 그 것을 실현했습니다.

> 그렇지 않다. 누가 홍해를 갈랐는가?

신입니다.

> 그렇다. 하지만 누가 신이 그렇게 하도록 요청했는가?

모세입니다.

> 그렇다. 그럼, 누가 나로 하여금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소생케 하도록
요구했는가?

예수입니다.

> 그렇다. 그렇다면, 모세와 예수가 한 것을 너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들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 좋다. 일단 너의 생각을 따르도록 하자. 근데 이런 유사한 기적들을 너는 나에게
요구할 수 없다고 믿는가?

아마 할 수 있겠죠.

> 그럼 내가 그 것을 허락하겠는가?

전 모릅니다.

> 그 것이 너와 모세의 차이점이다! 그 것이 너와 예수를 구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기원하면 당신이 그 요청을 들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힘을 보았기 때문에(혹은 그 것을 본 사람들을
믿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심지어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그리 놀라는가? 너 또한 이 것들을, 이 보다 더 한 것들을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너는 네 자신을 가치 없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니면 축복 받은 성모 마리아. 아니면 이런 저런 수호 성인. 아니면 태양신.
아니면 동방의 영혼. 너는 아무 이름이든지 사용하려 든다, 아무 이름이든 -
너 자신의 이름만 아니면!
나는 말한다- 요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건물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날게 될 것이다.

> 공중 부양을 한 사람들이 있다. 이를 믿는가?

글쎄요. 들은 적은 있습니다.

> 벽을 통과해서 지나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육체는 남겨 놓고서.

예, 예. 하지만 한 번도 벽을 통과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그렇게 하도록 권하지도 않습니다. 건물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아마 건강에 좋지 않을 겁니다.

> 뛰어내려 죽은 자는 자신을 분리된 별개의 자신으로 나타냄으로써, 한번도 신성을
드러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존재의 올바른 상태에서 나타났다면 날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설명해 주십시오.

> 그 빌딩의 사나이는 그 자신이 다른 존재와는 별개의 것으로 믿는 자아의 망상의
세계에 살았다. "내가 신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거짓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기 원했다. 더 크고 더 강력한.
그것은 에고의 행위인 것이다.
에고- 분리되어 있는 개별의-는 절대 무엇이 '하나'인지를 보여주거나 그 것을
복사할 수 없다.
자신이 신임을 보여주려는 노력에 의해 그는 그의 통합성이 아닌, 오직 분리성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비신성을 보여줌으로써 신성을 증명코자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였다.
한편, 예수는 통합성을 증명하고 그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과 사람으로 부터
통합성과 신성함을 봄으로써 신성을 보여 주었다. 그의 의식과 나의 의식이
합일을 이룬 상태에서, 그가 요구한 것은 무엇이든 그 신성한 순간에 그의
신성한 현실로 구체화 된 것이다.

알겠습니다. 기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크라이스트 의식"이군요!
글쎄요, 이 것이 문제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군요...

> 실제 그렇다.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리고 많은 자들이 그러한
의식을 달성했다. 많은 자들이 크라이스트화 되었다. 굳이 나자렛의 예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너 또한 크라이스트화 될 수 있다.

어떻게요?

> 존재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존재하도록 선택함으로써. 하지만 이는 네가 매일,
매순간 내려야 하는 선택이다. 이 것이 네 삶의 참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네 삶의 목표이다 - 너는 단지 이를 모르고 있다. 네가 이를 안다 할 지라도,
네 참 존재의 절묘한 이유를 기억한다고 해도, 너는 지금의 너로 부터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있고자 하는 곳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나는 다시 말한다: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저는 35년간 찾고 두드려 왔습니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그런 말들은 제게
상투적입니다.

> 환멸을 느끼는가? 하지만 진정코 나는 너의 노력에 좋은 점수를 주겠다, 소위
"A"를 주겠다. 하지만 네가 35년간 찾고 두드려 왔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네가 35년간 찾고 두드리기도 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 하자 - 주로 아니었지.
과거에 네가 마주 젊었을 때 너는 오직 네게 문제가 있거나 무언가 필요할 때만
나에게 왔었다. 네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 지면서 너는 그 것이 적절한 신과의
관계가 아니란 것을 인식하게 되고 보다 의미있는 것을 찾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나란 존재는 가끔 필요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그 후엔, 신과의 합일이 오직 신과의 영적 교섭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영적 교섭을 위한 실천과 행동을 실천하였지만, 여전히 일관성 없이 산발적인
것이 었다.
너는 명상도 하고, 종교 의식을 갖기도 하고, 기도와 찬송을 통해 나를 불러내기도
하고, 네 안의 '나의 정신'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하였지만 오직 그 것이
네게 이롭거나 영감을 받을 때 뿐이었다.
이러한 경우에만 나를 경험하는 영광이 있을 뿐, 아직도 네 인생의 96퍼센트는
분리의 환상속에 잡혀 있고, 궁극의 진실을 가끔 인식하는 짧은 순간이 존재할
뿐이다.
너는 아직도 자동차 수리, 전화 고지서, 인간 관계에서 얻고 싶은 것들,
이런 네가 창조한 드라마에 대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런 드라마의 창조주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 대신에.
너는 왜 네가 드라마를 계속 만들어내는지를 배워야 한다. 너는 그 드라마에서
연기하느

라 너무 바쁘다.
너는 너의 인생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이해대로 살지는 않는다.
신과의 영적 교섭으로 가는 길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 길을 가지는 않는다.
너는 그 길에 서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길을 걷지 않는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와서 35년간 찾아오고 두드려 왔다고 말한다.
너에게 환멸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나에게 환멸을 느끼는 것을 멈추고, 너의 있는 그대로를 보기 시작할 때이다.
이제- 나는 말한다: 너는 크라이스트화 하기 원하는가? 매일 매 순간 크라이스트와
같이 행동하라.(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하지 마라. 그는 이미 너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 모든 상황에서 크라이스트처럼 존재하라. (할 수 없다고 하지 마라.
그는 너에게 방법을 남겨 주었다.)
네가 찾기만 한다면, 도움은 너의 곁에 있다. 매일 매 순간 나는 너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네가 나와의 영적 교섭과 합일을 진심으로 찾는다면,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무슨 답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옮겨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진리를 창조해야 할지를 일러주는 작은
목소리이다.
그저 나에게 귀기울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아, 넌센스다! 너는 지금 이순간 그렇게 하고 있다. 단지 항상 그렇도록 하라.

매일 매 순간 이 노란 메모 공책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하던 것을
멈추고 당신에게 메시지를 적고 당신이 훌륭한 응답을 주길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 고맙다. 훌륭하다고! 여기 다른 훌륭한 응답이 있다: 아니다, 너는 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항상 종이와 펜을 휴대하고 다니기만 하면, 신과의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너는 기꺼이 그렇겠는가?

글쎄요. 물론 그렇겠지요.

> 좀전에는 못하겠다고 했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무엇이 너의 진실인가?
좋은 소식이 있다. 이제 너는 종이도 펜도 필요없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한다.
나는 펜속에 살지 않는다. 네 안에 살고 있다.

그게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그 걸 믿을 수 있습니다. 안 그런가요?

> 물론 너는 그 것을 믿을 수 있다. 처음부터 너에게 그 것을 믿도록 요구해 왔다.
그 것이 바로 모든 마스터들, 예수가 너에게 말해온 것이다. 그 것이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다. 그 것이 궁극의 진리이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시간의 저 끝까지라도.
이를 믿는가?

예. 믿습니다. 정말 어느 때 보다 말입니다.

> 좋다. 그럼 나를 사용하도록 하라. 만약 공책과 펜을 가지고 나가는 게 너에게
유리하다면(그게 너에게 잘 맞는 것 같다), 공책과 펜을 가지고 나가라. 더 자주.
필요하다면, 매일, 매 시간.
나에게 가까이 오라. 가까이 오라! 네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것을 행하라.
필요한 것을 모두 행하라.
로자리오서를 말하라. 돌에 입맞추라. 동방에 절하라. 찬송을 노래하라. 진자를
흔들어라. 근력을 시험하라.
아니면 책을 써라.
필요한 것을 모두 행하라.
각 개인에겐 각자의 의식 구조가 있다. 개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를 창조한다.
어떤 이에게 나는 남성이다. 어떤 이에게는 여성이다. 어떤 이에겐 양쪽 다 이다.
어떤 이에겐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또 어떤 이에게 나는 순수한 에너지이다. 어떤 이에게 사랑이라고 부르는 궁극의
감정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너는
단순히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하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는 바람이다. 나는 너의 육체를 따듯하게 하는
태양이다. 나는 너의 얼굴 위에 춤추는 비이다. 나는 대기 중의 꽃 향기이며
나는 그 향기를 위로 내보내는 꽃이기도 하다. 나는 그 향기를 운반하는 대기이다.
나는 너의 첫 생각의 시작이다. 나는 너의 마지막 생각의 끝이다. 나는 너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불꽃을 놓는 아이디어 이다. 나는 성취의 영광이다. 나는

네가 경험한 가장 사랑스러운 것에 연료를 붓는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에
대한 계속적인 갈망을 하는 너의 일부이다.
너에게 적합한 모든 것, 그 것이 일어나도록 하는 모든 것 - 너로 하여금 "재연결"을
하도록 하는 어떠한 찬송, 예식, 실연demonstration, 명상, 사고, 노래, 말, 행동
- 이를 행하라.
나를 기억하면서 이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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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joh)님께,
2권이 20장으로 되어있는데 오늘까지 2장까지 끝내었군요.
10분의 1정도 되는데 생각처럼 속도도 안나고,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네요.
오자와 단어 선택의 비일관성, 저의 성경등에 대한 지식 부족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습니다.
저도 모르겠군요. 끝까지 갈 수 있을런지..
그리고 번역본이 곧 나온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책이 나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