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대화 2권 2-1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mark) <210.120.14.133>
날 짜 (Date): 1998년 9월 29일 화요일 오후 01시 49분 52초
제 목(Title): 신과의 대화 2권 (2-1)


이 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고려해 보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요? 첫  챕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5개월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읽으면서 이 것이 한 번에  중단 없이 한번에 쓰
여진 줄 알겁니다. 이책의 32번째와 33번째 문단 사이에 20주의 간격이 있음을
모를겁니다. 어떤 경우엔 영감의 순간들이 반년  간격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합
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그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우리의 출발점으로서 첫
  주제로 삼아 보자는 것이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어째서 어떤 때는 하나의 간단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하나요? 왜 당신의 한 방문과 다음 방문이 그렇게 오래 걸립니
까?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여, 나의 방문과 방문 사이가 멀지 않다네. 내가 자네와
  함께 하지 않은 적이란 없다네. 자네는 단지 알지 못할 뿐이야.
 
왜요? 당신이 항상 여기 있었다면 왜 제가 그걸 모릅니까?
 
  그건 자네의 인생이 다른 일들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지. 이를 직면하게. 자네
  는 매우 바쁜 5개월을 보내왔어.
 
그래요.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

리고 그 일들을 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지.
 
꼭 그렇지만 않은 것 같군요.
 
  나는 자네의 행동을 돌아보도록 불렀네. 자네는 자네의 물질적 생활에 얽매
  여 왔지. 자네의 영혼에는 그 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
 
그 동안 힘든 기간이었어요.
 
  그래. 자네의 영혼을 그 과정에 포함시켰으면 더 좋았겠지. 나의 도움과 함께
  했다면 지난 몇 개월이 보다 원활하게 지났을 걸세. 이제 나와의 접촉을 잃
  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떻겠는가?
 
가까이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다시 놓치고 맙니다 - 내 자신의 드라마에
얽매이다 보면. 그러고 나면 당신을  위한 시간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명상도
안 합니다.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알고 있다네. 자네가 나와의 결속을 가장 필요할 때, 자네 스스로 그 것에서
  벗어난 다는 점이 인생의 모순이지.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을 중단할 수 있을까요?
 
  중단하게.
 
그게 제가 묻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 것을 중단함으로써, 그 것을 중단하게 되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매우 간단하다네.
 
그렇겠죠.

 
  그럴걸세. 왜냐면 자네의 소망은 나의 명령이기 때문이야. 기억하게, 나의
  친애하는 이여. 자네의 바램은 나의 바램이란 것을. 자네의 의지는 나의 의지
  라는 것을.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책을 3월까지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 10월입
니다. 책이 출간되기 까지 5개월 이상 갭이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거야.
 
좋습니다.
 
  물론이지.
 
아. 이런 게임을 해야 합니까?
 
  아니지. 하지만 이게 지금껏 자네가 자네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해온              
  방법이지. 자네의 마음을 끊임없이 바꿔왔지. 삶은 계속되는 창조의 과정임을
  기억하게.
  자네는 자네의 실제를 매 순간 창조하고 있는거지. 자네가 오늘 내리는
  결정은 내일 내리는 선택과 종종 다르곤 하지. 여기에 모든 마스터들의 비밀
  이 있네:  항상 동일한 것을 선택하라.
 
계속해서 말입니까? 한번이면 충분하지 않아요?
 
  자신의 의지가 현실에서 구체화 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일세.
  어떤 이에겐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몇 달이, 어떤 이에겐 몇
  주가.
  마스터에 근접한 이들에겐 며칠, 몇 시간, 혹은 몇 분이 거릴 수 있고,
  마스터에게 있어서 창조는

 즉흥적인 것이 되네. 의지와 경험간의 간격이 좁
  혀짐에 따라 마스터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네.
 
"자네가 오늘 내리는 결정은 내일 내리는 선택과 종종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요? 마음을 바꾸려는 상황에 절대 이르면 안된다는 말씀입니까?
 
  자네가 원하는 바대로 마음을 바꾸게나. 하지만 각각의 마음의 변경은 전체
  우주가 가는 방향을 변경한다는 점을 명심하게. 네가 무언가에 대한 마음을
  바꿀 때, 너는 우주를 움직이게 만든다네. 자네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힘 -
  자네의 상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이 네가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운동 법칙의 과정에 작용하게 되네.
  이 힘들과 과정은 모두 네가 바로 삶이라고 부르는 존재 전체를 구성하는
  상호 작용을 하는 에너지들의 독특한 연결망의 일부이지.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나"일세.
 
그래서, 내가 마음을 바꾸는 것은 바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까?
 
  나에게 힘든 것은 없다네 - 하지만 너는 스스로를 매우 힘들게 할 수 있지.
  그래서, 사물에 대하여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목적이 되어야 하네. 그리고
  그 것을 실제화 할 때까지 그로부터 마음을 거두어서는 아니되네. 집중하고
  중심에 머물러야 하네.
  단일 마음이 의미하는 게 이것일세.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전력을 다하여,
  전 가슴을다하여 선택하는 것이지. 연

약한 가슴으로 안되네.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네. 단호하여야 해.
 
"아니오"라고 답하지 말아라.
 
  그렇지.
 
하지만 "아니오"가 정답인 경우에는요?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이익에 위배되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이 아닌 경우에는요?
이럴 때 당신은 우리에게 그 것을 허락하지 않겠지요?
 
  틀렸어. 자네가 찾는 것은 무엇이든 준다네. 그 것이 자네에게 좋든 나쁘든
  간에. 최근에 자네의 인생을 돌아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  없다고 배워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최상의 선이 아닐 경우 신은 그 것을 주지 않는다고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자네가 어떤 특정 결과에 대해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야. 먼저, 우리 관계의 명확성에 대해 돌아보세. 나는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네 - 자네가 요청하는 것이지. 책 1권에 이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다음, 나는 자네가 요청한 것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네. 나는 사물을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부르지 않는다네. (자네 역시 이렇게 할 수 있겠지.)
  자네는 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진 창조적인 존재야. 자네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 하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어.
  사실, 자네가 어떤 것을 지나치게 갈망한다면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네.
 
알아요. 그 것 역시 1권에서 설명되었죠. 사물에 대한 갈망의 행동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한다고 하셨죠.
 
  맞았어. 왜 그런지 기억하고 있나?
 
생각은 창조적이며, 사물에 대한 갈망의 생각은 우주에 대한 선언- 진실의
선포 -이 되며, 이는 우주로 하여금 이를 현실화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군! 제대로 배웠어.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어.
  바로 그렇게 작용하지. 네가 "나는 이를 원한다"고 말하는 순간, 우주는
  "정말 너는 원한다"고 말하며 너에게 정확한 경험 - 그것을 "원하는" 경험을
  선사하지.
  "나는"이라는 뒤를 따르는 어떤 단어도 자네의 창조적인 명령어가 되는

  거야. 병속에 들어 있는 지니(genie) - 나 -는 오직 복종만을 위해 존재하지.    
  자네가 요청하는 것을 나는 만들어 내지! 네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청하면 되는거야. 아주 간단한 일이야.
 
제가 선택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다시 설명해
주십시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는 네가 선택한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너에게
  "최선"인지를 계속해서 궁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너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미리 보장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의 마음을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이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무엇이 저에게  최선인지 알아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구요?
 
  "최선"이란 수많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이 점이 선택
  을 매우  어렵게 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 오직 한가지만을 고려해야 한다 -
  이것이 '나는 누구인가?'의 선언인가? '나는 누가 될 것인가?'의 선언인가?
  모든 삶이 이러한 선언이어야 한다. 사실 모든 삶이 그러하다. 그런 선언이
  우연히 이루어 지는냐 아니면 선택에 의한 것이냐는 네가 결정한다.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은 의식적 행동에 의한 삶이다.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은 무의식적 반응에 의한 삶이다.

  반응이란 언젠가 이미 경험했던 행동에 불과한다. 네가 반응(re-act)할 때,
  너는 입련된 자료를 따져 보고, 동일한 혹은 유사한 경험을 찾기 위해 너의
  기억 저장소를 뒤지고 나서, 과거에 했던 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너의 영혼이 기억을 찾을 때는, '지금 이순간의 너'라는 진정한 경험을 창조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이러한 '영혼 탐색'은 네가 종종 들어 본 것
  일테지만, 이를 위해서 너는 말 그대로 "마음 밖"으로 나와야 한다.
  무엇이 너에게 "최선"인지를 찾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너는 오직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단 아끼는 것이 낫다.
  마음 밖으로 나오는 것은 훌륭한 시간 절약 방법이다. 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선택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너의 영혼이 재검토, 분석, 과거
  경험들의 비판 없이 현재의 경험만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를 기억하라: 영혼은 창조하고, 마음은 반응한다.
  영혼의 지혜는 네가 지금 이순간 경험하는 것이 신이 너에게 보낸 경험이란
  것을 네가 의식적으로 자각하기 전에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pre-sent;
  미리 보내어진) 경험의 의미이다. 그것은 이미 네가 그것을 찾기도 전에
  너에게로 가고 있다 - 네가 묻기도 전에 응답할 것이다. 모든 지금의 순간은
  신으로 부터의 축복된 선물이다. 이것이 선물(present)의 의미이다.
  영혼은 바로 지금 그릇된 사고를 치유하고 너에게 '나는 진정 누구인가'

  하는 올바른 경험을 가져다 주는 완전한 환경과 상황을 본능적으로 찾는다.
  이것이 너를 신에게로 회귀 하려는 바램이다 - 너의 집으로, 나에게로의 회귀.
  이것이 영혼이 경험적으로 스스로를 알고자 하는 의도이다 - 결국 나를 알고자
  하는. 비록 마음은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고 육체는 이 부정을 실천
  하지만, 영혼은 이 진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대신 영혼 탐색을 하라.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영혼은 이해한다.
  네가 무엇이 너에게 "최선"인지를 알아내려 시간을 보낼 때, 너의 선택은 세심해
  지고, 너의 결정은 한없이 걸릴 것이고, 너의 여정은 기대의 바다에서 출발할
  것이다.                                                                      
  주의하지 않는 다면, 너는 그 기대 속에 익사하게 될 것이다.
 
휴! 엄청난 말씀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영혼에 귀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내가 듣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은 너에게 느낌을 통해 말한다. 느낌에 귀 기울이라. 느낌을 따르라.
  느낌을 존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