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대화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mark) <210.120.14.133>
날 짜 (Date): 1998년 9월 26일 토요일 오전 06시 15분 14초
제 목(Title): 신과의 대화 2권 (1)


1993년 부활절, 일요일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있다. 손에 연필을
들고 앞에는 종이 패드를 가지고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

신이 나에게 여기 있도록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데이트를 했다.
우리는 신과의 3막극 중에 두번째인 2권째를 시작하려 하며 당신과 나는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무엇을 말하게 될지, 혹은 어떤 구체적 내용을 담게 될 지는
내 자신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이 책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담게 될지 결정하는 자가 아니다. 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1년전, 1992 부활절에 신과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우스꽝스런 얘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얼마 전에 대화는 끝났다. 휴식을
취하도록  이끌려 졌으며 오늘 이 대화를 재개하도록 '날짜'까지 주어졌다.

당신 또한 날짜가 있는 셈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그 날짜를 지키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나만을 위해 적혀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당신을 위해서도
적혀짐을 분명히 알고있다. 분명히 당신은 신과 신의 말을 오랜 기간 찾아 왔다.
나도 마찬가지 이다.

오늘 우리는 함께 신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 것은 신을 찾는 최선책이었다. 함께.
우리는 따로 따로 신을 찾을 수 없다. 다른 두가지 방법으론 찾을 수  없다.
우리가 분리되어 있는 한은 신을 절대 찾을 수 없다. 우리가 신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아는 첫 단계는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고 인신할 때까지는 우리가 신과 하나임을 알 수 없다.

신은 우리로 부터 한 순간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것은 흔한 착오인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서로를 찾는 것이다, 내가 발견한 것처럼.
서로에게서 숨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서 숨는 것도
멈추어야 한다.

숨는 것을 멈추는 좋은 방법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당장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멈추지 말아라. 자신에게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자신에게 타인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타인에게 또 다른
타인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

이것이 다섯 단계의 진실 말하기이다. 이것이 자유로 가는 다섯 단계의 길이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

이 책은 진실에 대한 책이다. 나의 진실이 아닌 신의 진실.

우리의 - 신과 나의 - 초기 대화는 한 달전에 결론지어 졌다. 나는 이번 책이
1권과 마찬가지로 진행되리라 본다. 내가 질문을 하고 신이 대답을 하는.
이제 여기서 멈추고 신에게 묻는다.

신이여, 이렇게 진행될 것입니까?

  그렇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책에선, 너에게 묻지 않고 내 스스로 일부 주제를 꺼낸다는 점을
  제외하면 마찬가지 이다. 잘 알듯이 1권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었다.

맞아요. 왜 이번에는 바꾸었습니까?

  그것은 이책이 나의 요청에 의해 씌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여기 있도록
  요구하였다, 네가 지적했듯이. 1권은 네 스스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첫 책에서는 너는 개요(agenda)를 가지고 있었다. 이 책에서 너는 개요가
  없다. 나의 의지를 따른다는 점을 예외로 하면.

그렇습니다.

  닐, 이는 매우 훌륭한 관점이다. 너와 모든 이들이 이 관점에 자주 이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의 의지가 당신의 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의 의지를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신의 의지가 나의 의지와 같다면..

  미묘한 문제이다. 하지만 시작하기에 나쁜 논점은 아니다.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기에 나쁜 논점은 아니다.
  잠깐 돌이켜 보자. 나는 나의 의지가 너의 의지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랬습니다! 지난번 책에서 매우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의 의지는 나의
의지이다"

  맞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얘기이다.

다르다구요? 저를 속이고 있군요.

  "너의 의지는 나의 의지이다"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의지는 너의
  의지라는 것과 다르다. 네가 나의 의지를 항상 행한다면, 너는 오로지
  법열(enlightenment)만을 얻을 것이다.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너는 이미
  도달한 것이다.
  하루만 오로지 나의 의지만을 행한다면 너는 법열에 이를 것이다. 네가
  평생을 내 의지를 행해왔다면, 너는 지금 이 책에 연루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네가 나의 의지를 행해오지 않았음이 분명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 너는 나의 의지 조차 모른다.

모른다구요?

  모른다.

그럼, 그게 무엇인지 말해 주십시오.

  좋다. 너는 듣지 않는다. 그리고 듣고 있을 때는, 진실로 경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청하고 있을 때에는, 듣고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듣는 것을
  믿을 때에는, 너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의지는 너의 의지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반면에 너의 의지는 나의 의지이다. 첫째, 나는 너의 의지를 안다. 둘째,
  나는 그것을 받아 들인다. 세째, 나는 그것을 찬양한다. 네째, 나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나는 너의 의지를 소유하며 그것을 나의 의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너의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든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나의 의지가 너의 의지가 되도록 하려면, 너도 같은 일을 해야 한다.
  먼저, 너는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둘째, 너는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세째, 너는 그것을 찬양해야 한다. 네째, 너는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다섯째, 너는 그것을 네 자신의 것이라고 불러야 한다.
  너희의 모든 역사를 통해, 오직 소수만이 이를 일관되게 해내었다. 한줌되는
  또 다른 자들이 이를 대부분의 시간동안 이루었다. 많은 자들이 이를 제법
  해내었다. 더 많은 자들이 이를 가끔 해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주 드문 경우에 이를 해내었다 - 한번도 못한 자들도 있지만.

나는 어느 경우입니까?

  그게 중요한가? 지금 부터 어느 경우에 들어가고 싶은가? 이것이 중요한
  질문이 아닌가?

그렇군요.

  그럼 너의 대답은?

처음의 경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항상 당신의 의지를 할고 행하고 싶습니다.

  칭송할만 하고, 권장할만 하고, 그리고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왜요?

  그것을 주장하기 전에 네가 이미 많은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주장할 수 있고, 신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이순간
  네가 그렇게 선택한다면. 너의 성장은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치 않는다.

그런데 왜 그토록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까?

  정말이다. 왜 그럴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분명 너는 내가 너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좋다. 명확성은 달성mastery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

달성에 이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 책을 계속 읽어라.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인도하는 것이다.